08 January 2008

무소유 (9) 아파트와 도서관


아파트와 도서관


한때 우리 나라에는 '섰다' 하면 교회라는 말이 있었다. 그러나 그 말도 이제는 빛이 바래졌다. 그 자리에는 바야흐로 호텔과 아파트가 우뚝우뚝 치솟고 있다.


호텔은 요즘 밀려드는 외국 관광객의 사태로 이른바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니, 외화 획득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국가 정책에서 볼 때 크게 환영할 일이다. 그 외화의 위력 앞에 몸과 마음을 아무렇게나 굴려 겨레의 체면이나 긍지를 내동댕이치는 일만 없다면.


서민의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해 적극 장려되고 있는 건축 야식이 아파트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이 아파트가 본래의 건축 목적을 외면한 채 호화판으로 기울고 있으니 어떻게 된 노릇인가. 심지어 한 가구에 2천만 원짜리까지 있다니, 그것도 '파격적인 가격'이라고 한다니 서민들은 그야말로 파격적인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아직도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의 주택 부족률은 40퍼센트 선을 웃돌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이런 사정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을 아파트 건축 관계자들임에도 호화판에만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이다. 호화판일수록 입주자가 쇄도하기 때문인가. 호화 아파트는 대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오손도손 살기 위해서가 아님은 물론이다. 허영심을 부채질하고 일부 여유 자금의 부동산 투기 대상이 되가도 한다는 것. 이래서 서민들은 혜택권 밖에서 바람비를 맞는다. 가난한 서민의 이름으로 시작된 일이 돈 많은 부자들 차지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아파트의 위세가 설 자리를 가리지 않고 어디나 불쑥불쑥 고개를 디밀려는 데에 우리는 저항을 느낀다. 서울 대학교 본부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소식을들었을 때 심히 안타깝고 착잡한 심경이었다.


그 대학이 내게는 모교도 ㅏ교도 아니지만, 역사 깊은 대학의 터가 학문의 전당으로 보존되지 못하고 기껏 그러한 아파트로 주저 앉는가 싶어서였다. 가뜩이나 대학의 역사가 길지 않은 우리이고 보면 그 터는 평당 얼마짜리의 단순한 지면地面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이며 분위기까지도 대학의 역사와 함께 보존되어야 한다.


최근에 나는 참으로 흐뭇한 소식을 들었다. 그것은 눈물겹도록 갸륵하고 고마운 일이었다. 서울대 본부 캠퍼스에 국립도서관을 지어 캠퍼스를 학문의 전당으로 보존하자는 운동이 그 대학 동창인 가정주부들 사이에 일고 있다는 것이다.


17억 원을 들여 여의도에 지을 국립도서관을 서울대학 자리에 짓는다면 그 캠퍼스는 길이 학문의 전당으로 보존될 거라는 의견은 모든 시민들이 크게 공감할 바다. 그리고 국민의 세금으로 지을 국립도서관이라면 국민 누구나가 편리하게 드나들 수 있는 위치여야 한다는 점에서도 그 캠퍼스는 최적지일 것이다. 여의도에는 국회도서관이 설테니 한 군데 둘씩이나 세울 필요는 없다. 그리고 도심에 아파트를 짓는 것은 도시의 인구 분산 정책에도 역행되는 일이다.


이제 시민들은 관계당국의 지혜로운 배려가 있기를 다 같이 기대하자. 아파트냐 도서관이냐는 민족의 슬기를 잴 수 있는 하나의 척도가 될 것이다. 우리들이 '그 집 앞'을 지날 때마다 지혜로운 배려에 미소를 머금을 수 있도록, 이 시대의 우리만이 아니라 후대의 자손들까지도 그 미소의 의미를 물려받을 수 있도록 한 겨레의 처지에서 간절히 바라는 바다.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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